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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

Me 163 코메트 세계 최초 초고속 로켓 전투기

by №℡ 2021. 2. 3.

■□ 독일 초고속 로켓 전투기

1919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공군의 보유 및 전투기, 폭격기, 그리고 장거리 포병화기의 개발 및 보유가 금지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조치에는 일반적인 장비만이 포함되고, 당시 아직 이론 정립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던 로켓, 특히 액체로켓 분야는 제약이 없었다.

이 때문에 독일 육군은 꾸준히 장거리 포병화기로서의 로켓, 특히 액체연료로켓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훗날 베르사유 조약이 무력화되고 독일 공군이 창설되면서 육군에 몸담고 있던 신생 공군 간부들이 액체연료 로켓의 항공기 탑재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 코메트의 개발 착수 배경이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마찬가지로 동력 항공기의 개발도 막혀버렸으며 글라이더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게 코메트에 보이는 후퇴익 글라이더를 개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때문에 매우 발전된(당시로는) 후퇴익 글라이더+로켓 엔진으로 구성된 전투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초기 독일 공군은 모든 종류의 로켓에 대해 RATO(Rocket-Assistance Take-Off, 로켓 보조추진 이륙)로서의 가능성에만 주목했으나, 초기에 폭발적인 추력으로 급속 가속, 단시간에 고고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독일 공군의 일부 기술관료들이 고고도로 날아오는 적국의 중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요격기의 개발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며 그 결과 발터 HWK-109-509 가스발생기 사이클 로켓엔진이 제작되었다.

여기에 독일 글라이더연구소(DFS)에서 알렉산더 리피쉬가 1940년에 개발한 실험용 로켓비행기 DFS-194가 있었다.

해당 기체는 글라이더에 소형 로켓을 결합한 기체로, 540km/h를 낼 수 있었다.

당시 개발자인 알렉산더 리피쉬는 글라이더 자체보다는 고속 항공기의 항공역학적 특성 연구를 위한 실험기 설계로 유명했고 이 DFS-194는 그중 실용화로 이어진 유일한 기체이다.

그의 실험기 중에는 전리층에서 활동하는 초고고도 극초음속 전투기 계획도 있었다.

(위의) 로켓엔진과 로켓비행기의 설계를 원용한 기체를 결합, Me163으로서 1941년에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이때는 HWK-109-509 엔진이 없어 페네뮌데 연구소에서 사용하던 실험용 로켓 모터를 빌려 장착한 상태의 실험기였다.

그 후 엔진의 개발 및 양산체제가 구축된 1944년에 제식 채용되었다.

Me163의 진정한 의미는 흔히 알려진 것 같은 고속성능이 아니라 압도적인 상승력과 우수한 고고도 비행성능이었다.

본래 독일 공군의 전투기 개발사상은 높은 상승력을 통해 신속하게 적기의 영공침입에 대처하는 요격기 개발을 중시해 왔다.

이 문제 때문에 독일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Bf109 역시 등장시기를 기준으로 전투기들 중에서 상승력과 고고도 비행성능이 좋은 편이었다.

해당 측면만 볼 때 로켓 엔진 전투기는 그런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고 엔진 출력이 공기밀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당시의 전투기는 프로펠러 추진의 한계상, 수평속도는 얼마가 나건 상승력은 초당 20m 넘기면 힘 좋다는 소릴 듣던 시절이다.

그 와중에 로켓 추진으로 80 m/s를 찍어준 Me163의 상승 능력은 요격기로써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독일 공군은 개발 당초부터 본토방공용 전투기로서 로켓전투기의 존재가치를 높게 생각하고 있었고 연합군의 전략폭격이 극심해지기 시작한 1943~1944년 시점에 이르러서 Me163은 획기적인 방공수단으로 부각되어 적지 않은 기대를 모았다.

■□ 그러나 처참한 현실

로켓 모터는 단시간에 대량의 연료를 소비한다는 문제 때문에 엔진의 작동 가능 시간은 길어야 수 분을 넘지 못했고, 일단 고도 7~9000m 도달까지는 순식간에 할 수 있지만 그 고도에 도달하고 나면 연료가 거의 남지 않아 고작해야 일격이탈 후 탈출을 위해 딱 한 번 가속할 연료만 남아도 다행이었다.

따라서 엔진을 켠 상태로 갈 수 있는 거리는 길어야 40km 남짓이었고, 이후에는 계속 활공으로 비행해야 했다.

항속거리가 저 모양이니 작전반경이 개판이라는 것은 뻔했고 이 문제를 알아차린 연합군은 Me163에 대한 대책으로 '폭격기 부대의 항로를 Me163 기지로부터 60km 정도 돌아서 가도록' 했다.

그리고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조치만으로 Me163의 존재 가치는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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